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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오의 여름은 햇볕에 반짝이는 연화오와 흐드러지게 핀 연꽃, 우렁찬 수사들의 목소리. 자세히 들어보니 우렁차긴 하지만 남은 힘을 쥐어짜 내뱉는 악이었다. 연무장과 떨어져 있어 작지만 낮게 소리치는 여성의 목소리에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고생하고 있겠구나.”

 

    강염리는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연화호를 보았다. 신과 말(襪)을 구석에 벗어두고 연화호에 다가갔다. 투명한 수면에 비친 얼굴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몸을 기울이고 팔을 쭉 뻗어 맑은 물을 작은 동물의 털을 쓰다듬듯이 어루만졌다. 햇볕이 따가워도 시원한 연화호에 몸을 맡긴다면 더위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연화호에 빠져서 더위를 식히기엔 보는 눈도 많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꾸중을 들을 것이었다. 손에 묻은 물을 털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치맛단이 젖지 않게 조심히 모아 추스르고 바닥에 앉았다. 발만 담그는 정도면 괜찮겠지. 천천히 다리를 내려 물에 담그는 것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강염리는 얼굴이 화끈거려 땀이 났고 숨고 싶어졌다. 연화오 부두 인근을 지나가는 수사마다 멈춰 서서 인사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붉어진 얼굴을 푹 숙였다. 민망함 때문에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강염리는 수사들을 위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발을 휘저었다. 더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자 연꽃을 보며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노랫소리는 바람을 타고 잔잔하던 수면 위에 일어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햇볕을 받은 연화호에서는 연잎은 초록빛, 활짝 핀 연꽃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연무장에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는 것도 몰랐다.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그동안 자주 스쳐 지나갔던 운몽의 수사, 아니면 동생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강염리는 드디어 언제 어머니가 연무장을 나서게 될지 가늠해보던 중이었다.

 

    “좋은 노래구나.”

    “아!”

 

    화들짝 놀라 휙 몸을 돌리자 몸이, 특히 다리가 연화호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기우뚱 몸이 기울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가온 사람이 익숙한 목소리의 자색 옷을 입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눈을 질끈 감고 물에 빠져버렸다. 자색 옷에 달린 은령이 바람에 딸랑이는 소리를 냈다.

 

    “아리!”

 

    강염리의 뒤에서 다가오던 누군가는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 우자연이었다. 잠깐의 우려와는 별개로 운몽 강 씨 강염리는 헤엄을 칠 줄 알았다. 우자연은 아이가 물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침착하게 있으려고 했지만 역시 신경이 쓰여 연화호로 다급하게 걸어갔다. 아이의 노래를 듣는 것은 오랜만이라 우자연은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것도 은은한 미소를 띠면서 지켜봤다. 막 훈련이 끝난 연무장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날 선 우부인과는 다른 애정 어린 시선이었다. 어머니가 되어서 아이를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힘없이 빠져버린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에 잠겼다. 우자연은 강염리를 눈앞에, 보이는 곳에 두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작고 어리게만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라났고,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하…. 죄송해요, 어머니. 놀라셨어요?”

    “아리,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 아가씨가 조심성도 없이! 우자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화부터 냈다. 강염리를 끌어 올리려 손을 뻗으려는데 분홍 연꽃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강염리는 물이 뚝뚝 흐르는 턱을 손등으로 쓸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크고 예쁘게 피어 있는 연꽃이 눈에 들어왔다. 잽싸게 손에 힘을 주어 꺾자마자 어머니께 들어 보였다. 다그치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고 강염리는 그런 어머니의 감정을 조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강염리는 정말 괜찮다고,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 맑게 웃으며 연꽃을 건넸다. 우자연은 멍하니 연꽃을 받아들고 웃는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강염리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능숙하게 올라와 물을 짜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햇볕에 뜨끈하게 말라 달궈지던 바닥이 강염리의 옷과 머리에서 떨어진 찬물로 미지근해졌다. 우자연은 강염리의 맨발을 한번 쓱 보고 젖어서 피부에 달라붙은 옷을 보다가 한숨을 삼켰다. 인상을 찌푸린 채로 다가가 검지로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옆으로 넘겨주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쩌고 혼자 나와 있느냐.”

    “아, 아니에요.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너무 예뻐서 잠시 앉아 있었어요.”

    “기다릴 필요 없대도.”

    “꽃은 마음에 드세요?”

 

    강염리는 받아든 꽃을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물었다. 멀리서 지켜본 어머니는 차를 마시며 연화호의 연꽃을 보는 것을 즐겼다. 연화호의 사계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연화호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대답 없는 어머니의 앞에서 강염리는 작게 웃음을 흘려냈다. 연꽃을 쥐고 가만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대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을 대충 짠 뒤 잰걸음으로 벗어두었던 신을 신고 말(襪)을 챙겨 돌아섰다. 연꽃을 보는 우자연은 꼭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엷은 미소까지 두르고 있어 필시 좋은 기억일 것이었다. 어머니를 보던 강염리는 속이 찔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꽃을 꺾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우자연은 곧 강염리가 한 짓을 문책하려 했다. 꺾으면 금방 시들고, 시들면 버려지는 꽃은 그 자리에 있어야 오래 피어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자연은 어이없게도 물에 빠진 강염리 때문에 놀랐고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연꽃을 꺾어 건네받는 바람에 할 말이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지 못했다. 재차 주의를 주려던 찰나 연꽃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맴돌아 더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연꽃향을 맡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알고 건넨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우자연은 코웃음을 치며 먼저 연화오를 향해 걸어갔다. 누구를 닮았는지 원…. 강염리는 종종 놀라울 정도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곤 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와서 아무 말도 못 하게 했다. 우자연의 생각을 알 리 없는 강염리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우자연과 강염리는 어느새 보폭을 맞춰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는 흥얼거리는 소리에 우자연은 고개를 돌렸다. 이유도 모르고 들뜬 아이를 보고 있자니 차분하지 못한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또 뭐가 좋다고 그러는 게야.”

    “어머니, 이때 연꽃이 참 예쁘지요?”

 

    강염리는 한참을 연꽃만 보고 걷던 어머니가 좋았다. 소중하게 쥐고 있는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갔다. 인상을 펴고 슬며시 웃음 짓는 얼굴을 오래 보고 싶었다. 마주 보는 시선이 따스했다. 배시시, 따라 웃었다.

 

    “어머니도 연꽃 같으세요.”

 

    흐, 으엣취. 젖은 옷이 마르면서 쌀쌀해졌는지 강염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재채기를 했다. 우자연은 강염리를 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줬다면 이제는 어머니로서 아이를 돌볼 차례였다.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강염리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자줏빛의 길게 늘어진 우자연의 망토였다. 떨어지지 않게,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게 꽁꽁 여며주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연화오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 어서 들어오지 않고 무엇 하느냐.”

 

    강염리는 어머니가 둘러준 망토를 꼭 쥐었다. 역시, 온기가 담긴 망토는 따뜻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간질거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성큼성큼 걸어가 어머니를 따라잡았다. 강염리는 멀리 뒤처지지도 않았고 앞서가지도 않았다.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발을 맞췄다. 하늘은 느긋하게 다홍빛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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