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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가리지 않는 매미 울음소리가 문풍지를 뚫고 들어오는 계절이었다. 넓은 잎이 무성하고 곁가지가 많은 나무 아래 지어진 집은 이런 후덥지근한 밤도 견딜만하게 해주었다. 바람이 잘 들고 그늘이 커닿게 드리워져 있으니 아이가 잠결에 칭얼거릴 일도 없었다. 창문 틈에 향이 강한 약초를 빻아 섞은 잿가루를 뿌리면 밤사이 벌레가 드는 걸 막을 수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해 보았는데 여즉 의심스럽기만 했다. 남들보다 수련이 부족하기는 했어도 잠시나마 수진계에 문하생으로 몸담았던 나청양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번거롭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민간요법보다 부적 한 장, 검 한 자루를 더 신뢰했다.

 

    "엄마……."

    "이런, 잠이 안 오니?"

    남편은 잠자리를 뒤척이는 편이 아니라 언제나 가장 먼저 잠들었다. 베개에 머리를 뉘이면 어쩜 그리 빠르게 수마에 빠지는지. 딸도 그를 더 닮아 갓난쟁이였을 때도 밤에 고생시키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눈을 말똥하게 뜨며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청양은 면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토닥였다.

    "자꾸 생각나서."

    "무엇이?"

    "공자님 얘기, 또 해주세요."

    언젠가 저를 잡아먹으러 올것만 같던 무시무시한 이릉노조가 어느새 공자님이 된 것이 퍽 우습고 괜히 원인을 제공한 자신이 부끄러워져 눈썹이 아래로 휘었다. 이십여 년 전 빛을 발하던 홍안의 소년은 또다시 작은 영혼에게 환상을 새긴 모양이다. 처음 지푸라기 속에서 못 볼걸 본 듯 울먹이던 작은 면면이 종종 그를 언급하게 된 건 그날 나청양이 어떤 소년에게 구해졌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부터였다. 아주 기적 같은 우연으로 재회한 것이 역시 마지막일 줄 알고 묵혀온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을 꺼낸 것이었건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몇 달에 한 번 도려와 함께 술단지를 어깨에 이고 찾아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당신의 첫사랑이오?"

    웃으며 짖궂게 물어오던 남편은 저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낌새가 다분한 낯이었다. 본인 역시 위무선에 대해 누군가 물어온다면 그리 대답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수련이 높고 외모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 또래의 사내가 목숨을 구해줘 반했다는, 매우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만약 그 질문에 제가 맞다고 한다면 저는 그저 어린 날 연심을 품었던 이라서 모든걸 두둔하는 한낱 아녀자가 될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제가 그를 증명하는 데에는 사실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을요."

    이미 그런 경험이 있었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소년이 죽은 자까지 농락하는 극악무도한 작자가 되어갈 때였다. 나청양은 자신했다. 그를 감싸려 변호한 것이 것이라 모략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지탄한 것이라고.

    이름도 없다시피한 작은 가문의 여자 문하생이었다. 그런 나청양이 위무선이 아니라 금광선을 변호했더래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따위 집단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럽고 모욕되어 아무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그 옷가지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한때는 글도 모르던 어린 하인을 거두어 가르쳐주기까지 해 감사할 때도 있었는데.

    금린대에서 내려올 때 생각도 못한 함광군의 배웅을 받아 눈물이 울컥 흘러나왔다. 함광군 같은 자가 그 사람을 믿고 있구나. 정말 다행이다. 이런 벗이 있다면 더 나쁜 상황까지 몰리지 않을 테지. 모욕당한 억울함과 은인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고 가뿐히 길을 나섰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암약하게 그늘졌다. 박쥐와 겁쟁이가 판치는 수진계에 학을 뗀지라 그냥 검을 놓고 일반 백성들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살면 편하지 않을까 했다.

    "들었소? 위무선이 부리던 것들에 잡아먹혀 죽었다는군!"

    "평생 돌봐준 강가를 배신하더니 세상에, 사저 부부까지 죽여버렸다지?"

    "강 종주가 이릉노조의 시신 찾겠다고 미쳐 날뛴다지 뭔가."

    "아하, 천지 어디에도 없을 원수이니 시체로라도 벌하고 싶은 게야. 아니, 잠깐. 위무선은 사마외도가 아닌가. 죽은 자들을 부리던 몸이니 자기가 직접 살아 돌아오는 거 아냐?"

    '위 공자가 죽었다고?'

    분명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위무선은 현무동굴의 소년이 전부였다. 이후의 삶이나, 세상이 떠들어대는 현재의 이릉노조가 정말로 어떤 모습인지도 알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열일곱 언저리의 위 공자가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일리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본 것을 언젠가라도 말하고 싶었다. 설사 이릉노조가 죽지 않고 돌아온다면 한 번쯤 다시 기회가 있지 않을까.

    당신이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아직도 살아서 기억하고 있다고. 헛되게 사라지지 않았다고. 수련하는 몸이 아니었는데도 나를 위해 함께 야렵을 하겠다 나서는 사람을 만나 혼인도 했다고. 아이가 태어나면 면면이라고 지을 건데 절대 당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어린 치기와 배포를 물려주고 싶어서라고.

    도 없는 남이나 마찬가지인 이를 친우처럼 이따금 그리워하며 수진계 소식을 모조리 끊고 살던 중, 위 공자가 함광군과 함께 돌아왔다.

    걸음마다 잔디에 서리가 내려앉는다는 말도 따라다니는 함광군의 흐뭇한 미소가 이제는 익숙해졌다.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 옛날부터 자신이 어떻게 비쳤을지 생각하니 진땀이 났다. 설마, 그 함광군이 나를 질투한 건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아 일부로라도 거리를 뒀다. 그럴 때마다 위 공자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제 도려를 골려줄 생각만 가득 차 보이는 것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면면! 뭐 해요? 이 다정하게 내미는 술병이 언제 쏟아질지 몰라 마음이 아플뻔했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던가. 작은 면면으로 인해 옛일을 떠올린 다음날이었다. 최근 마을 동쪽 부근의 숲에 각기 다른 종류의 귀가 몰려 골치가 아프던 참에 이 도려 부부가 후배 몇을 이끌고 야렵하기로 했단다. 유독 위 공자와 친밀해 보이는 남 씨 자제 둘을 보다가 왠지 모를 금 종주까지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그만 손가락질을 하고 말았다. 당황한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는 어린 금 종주의 머리를 위 공자가 쓰다듬었다. 진상을 알고 보니 근방의 장사치가 수상쩍은 물건들을 팔아재껴 엄한 것들이 민가에 달라붙은 것이다. 

    "말이나 못하면. 몸을 사리려거든 입부터 쉬세요. 아직도 열몇 살의 세가 공자인 줄 알아."

    "치, 네, 네. 나 낭자. 조용히 우리 남잠에게나 주정 부리겠습니다. 흠, 남잠! 나 한 잔만 더 마실게. 괜찮지?"

    "……응."

    나청양은 알았다. 저 한 잔 허락한 것이 결국 몇 단지로 늘어날지를.

    "위 공자."

    "음? 뭐야. 취중진담으로 무슨 얘길 하려고? 그렇지, 우리 작은 면면이 옛날 누구처럼 나를 싫은 척 좋아하더라는, 읍? 으읍!"

    나청양이 뭐라고 한소리 하기 전에 남망기가 먼저 안주를 냅다 먹였다. 말이 막혀서 바둥대던 위무선이 남망기의 빤한 얼굴을 보고서야 조용해졌다. 어절수없다는듯 우물거리며 웃는 위무선을 보며 나청양이 다시 한번 불렀다.

    "다행이에요. 정말로."

    "엥, 뭐가 말이죠?"

    "아무튼, 위 공자와 술자리를 함께 할 여인이 저뿐인걸 공자도 다행으로 여기세요. 남이었으면 벌써 쫓겨났다고요?"

    이어서 고마웠다는 말도 하고 싶었으나 이제 와 위무선의 성정을 알게 된 그로서는 그 말이 적절치 않다고 여겼다. 이 사람은 자신의 지난 선행에 감사를 받는 걸 싫어해. 아니, 싫어한다기보다 아예 감사받을 일을 잊고 말지. 함광군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과와 감사를 무거운 말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청양은 오히려 남망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시 돌아온 위 공자에게 당신이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까지도 지나쳐갔을 뿐인 인연을 이성인데도 불구하고 벗으로서 교류하게 해 준 것도 오로지 이 사람을 위해서겠죠.

    "감사합니다. 함광군."

    "저야말로."

    나청양은 네 사람 중 유일하게 취한 남편을 부축하면서 이제는 작은 면면에게 들려줄 공자님 이야기가 더 없겠구나 생각했다. 

    "엄마. 오늘은 뭘 잡았어요?"

    "오늘? 음, 우리 면면이 야렵이 궁금한가 보구나."

    "네. 수선하는 사람들을 귀신을 없애는 일을 하는 거죠?"

    "그래. 하지만 없애기만 하는 게 아니야. 멸은 도화의 다음 단계인데, 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규칙에 멈칫한 나청양이 곧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순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란다. 모두 사정이 있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가져야만 해. 그것들은 각자 이름을 가졌는데, 요마귀괴라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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